[촛불, 길을 찾다] 고립된 섬, 손부터 내밀어야

by 센터 posted Apr 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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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4월 11일 조선소 하청 노동자 2명이 울산 현대중공업 앞 20미터 높이의 고가도로 난간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은 현대중공업-미포조선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다. 지난해까지 1만 명의 하청 노동자를 쫓아낸 현대중공업은 올해에도 1만 명을 더 해고시킨다는 계획이다. 노동자들은 고공에 올라 조선소 위기의 책임을 비정규직에게 떠넘기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흘 뒤인 4월 14일 광화문 네거리 40미터 높이 광고탑에 6명의 비정규직, 장기투쟁, 해고 노동자들이 올라갔다. 비정규직 사업장인 동양시멘트, 현대차, 아사히글라스와 정리해고 사업장인 콜트콜텍, 노조 탄압 사업장인 세종호텔,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들이다. 6명의 노동자들은 고공, 삭발, 단식농성이라는 극한의 투쟁을 벌였다. 2017년 4월, 노동자 시민들의 항쟁으로 불의한 권력을 몰아내 정치의 봄이 돌아왔지만, 노동 현실은 여전히 극한의 한겨울에 놓여있다는 것을, 노동자들이 몸뚱아리로 보여주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라고 부른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2017년 4월 현재 ‘장기투쟁사업장’이 60개에 이른다.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징계, 해고, 고소고발, 손해배상, 구속 등 온갖 탄압을 받으며 오랜 시간동안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을 뜻한다. 

‘장기투쟁사업장’은 ‘악성사업장’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 투쟁을 장기적으로 하고 싶은 노동자는 없다. 모든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빨리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 사업주가 민주노조를 인정하고 성실하게 교섭하면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된다. 하지만 악질사업주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민주노조의 뿌리를 뽑고 싹을 잘라내고 싶어 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노조는 인정할 수 없다”는 삼성 창업주 이병철의 유언은 한국에서 노조의 존재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악성사업장, 악질회사에서 힘겹게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한 손에 정리해고, 다른 손에 복수노조


악성사업장 노동자들이 많아지는 가장 큰 이유는 노동 관련 법제도, 즉 노동악법 때문이다. 10년 동안 싸우고 있는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2007년 3월 12일 콜트악기 인천공장, 4월 12일 콜텍 대전공장에 정리해고가 통보됐다. 창문도 없는 감옥 공장, 먼지 구덩이 속에서 명품 기타를 수출한다는 마음으로 평생 기타만 만들던 노동자들이었다. 회사 사장 박영호는 한국 부자 순위 120위였고, 콜트는 세계 기타 시장의 3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인도네시아와 중국 공장을 새로 만들었다. 박영호는 회사에 노조가 만들어지고,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자 아예 공장을 없애버리기로 마음먹고 폐업을 했다. 노동자들은 억울해서 싸움을 시작했다. 한 노동자는 분신을 했고, 송전탑 고공농성, 본사 점거농성, 해외 원정투쟁, 단식농성이 이어졌다. 2014년 6월 12일 대법원은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며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지금은 먹고 살만하지만, 장래에 직장을 잃을 수도 있어 아이를 고아원에 보낸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판결이었다. 50년 만에 정권 교체를 했다는 김대중 정부가 만든 정리해고법이 악질사업주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됐고, 노동자들을 10년 넘게 길거리에서 싸우게 만들었다. 노사 합의로 단계적으로 복직하고 있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정리해고제라는 악법 때문에 28명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4.고공농성.jpg

여섯 명의 노동자들이 4월 14일부터 고공 단식농성 중인 광화문 광고탑.


‘하늘 감옥’에 올라간 세종호텔 고진수 전 노조위원장은 정규직이다. 해고자도 아니다. 세종호텔은 일하기 좋은 직장이었다. 정규직 300여 명이 노조에 가입했고, 비정규직이 들어와도 1년이 되면 정규직이 됐다. 그런데 세종대 주명건 전 이사장이 세종호텔로 복귀한 후 달라졌다. 회사는 기업노조를 만들어 조합원들을 빼갔고, 민주노조는 소수노조가 됐다. 정규직은 5년 새 130명으로 줄었고, 사내 하도급과 용역 등 비정규직이 대폭 늘었다. 연봉제를 도입해 정규직의 월급은 30퍼센트 이상 줄었다. 이에 항의하는 노조원들은 강제전보를 당했고, 김상진 전 노조위원장을 해고시켰다. 행복한 회사를 지옥의 일터로 만든 것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법안이다. 2009년 12월 30일 복수노조 허용 법안이 통과됐다. 그런데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족쇄가 달렸다. 2개 이상의 노조가 단일한 교섭단을 만들지 못하면 소수노조는 교섭권 없는 식물노조가 된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당시 법안을 만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었다. 그는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야당 의원들을 쫓아내고 한나라당 의원만으로 법을 통과시켰다. 복수노조 시행 5년, 유성기업·발레오·KEC·상신브레이크·콘티넨탈·만도 등 힘센 노조가 있는 회사에서 제2노조가 좀비처럼 생겨났고, ‘창조컨설팅’ 같은 노조파괴범들이 활개 치게 됐다. 악질사업주는 한 손에 정리해고법, 다른 손에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법안을 들고 민주노조를 향해 칼을 휘두른다. 갈 곳을 잃은 노동자들이 하늘로 오른다. 


4.천막.jpg

광화문 고공농성 중인 광고탑 아래 비닐천막을 치고 농성 중인 노동자들.


무법천지로 변한 일터


악성사업장을 만드는 또 다른 원인은 일터를 무법천지로 만든 정부와 정치다. 하늘에 오른 6명의 노동자 가운데 3명이 비정규직 노동자다. 현대자동차·동양시멘트·아사히글라스 해고 노동자들은 모두 사내하청 노동자들이다. 현대자동차는 대법원에서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가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고, 동양시멘트도 소송을 낸 조합원 모두 서울중앙지법에서 정규직으로 인정받았다.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은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고, 불법파견으로 회사를 검찰에 고소했다.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을 내린 이후 7년 동안 법원의 판결은 제조업의 사내하청은 ‘합법’ 도급이 아니라 ‘불법’ 파견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할 노동자들을 불법으로 비정규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불법을 방치한다. 노동자, 법학교수, 변호사들이 정몽구 회장과 현대차 사용자들을 불법파견으로 고소·고발했지만, 10년 넘게 불법을 저지른 사용자 단 한 사람도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 때부터 박근혜 치하까지 검찰은 불법파견으로 단 한 명의 대기업 사용자도 처벌하지 않았다. 정부가 불법을 방조하자, 악질사업주들은 대놓고 불법을 저지른다. 파견 노동자 사용이 법으로 금지된 제조업은 사내하청 파견 노동자 천지다. 법을 지키라고 싸우는 노동자들은 갈 곳을 잃는다. 하늘로 오른다. 현대자동차 천의봉·최병승이 송전탑에서 296일을, 기아자동차 최정명·한규협이 광고탑에서 363일을 싸웠지만, 정부와 정치는 늘 재벌 편이다. 


노동자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노동 운동이다. 하지만 무기력한 노동 운동도 악성사업장 노동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왔다. 사람의 몸에 병균이 들어오면 모든 세포들이 달려들어 병균에 맞서 싸운다. 그대로 두면 병균은 온 몸으로 퍼진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악질사업주가 현장에서 활개를 치게 된다.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투쟁이 끝난 이후 금속노조 경주지부 발레오만도를 시작으로 많은 사업장에서 악질사업주가 창궐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당사자들이 요구하면 으레 한 번 연대하는 게 아니라, 악질사업주와 끝장을 본다는 각오로 싸워야 하는데, 형식적인 투쟁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철도노조 등 대기업 공공부문 노조 간부들이 악성사업장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섰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산별노조의 지원이 있지만 지속되지 않는다. 생계를 견디지 못한 노동자들이 투쟁을 포기하고 떠난다. 투쟁은 길어지고, 사회적 관심은 줄어든다. 노동 운동마저 외면한다고 느낀다. 오래 싸운 노동자들은 고립된 섬처럼 느낀다. 고공, 단식 등 극한의 투쟁을 선택한다.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등 악성사업장 해고 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갔다. 시민 사회가 나서 ‘희망버스’를 제안하고, 사회적으로 알리고, 함께 연대해 복직을 이뤄낼 수 있었다. 


악성사업장 노동 문제는 새 정부와 정치가 나선다면 해결된다. 정리해고제와 파견법, 기간제법,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법을 없애고, 위장도급과 불법파견을 엄벌하면 된다.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면 악질사장들은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새 정부가 악성기업 노동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이미 민주당 정권 10년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악성사업장 문제, 노동 운동부터 달라져야 한다. 당사자들은 노동 운동 지도부를 신뢰하지 않는다. 서로 믿지 않는데 힘이 모아질 리 만무하다.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열고 진심을 다해 방법을 찾아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형식적인 간담회가 아니라 밤을 꼬박 새워서라도 당사자들과 터놓고 논의하고, 총연맹과 산별노조 조직 내에서 힘을 다해 설득하고 함께 싸워나간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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