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합의하라고요?_동양시멘트지부

by 센터 posted Apr 27,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곽세영 센터 활동가



종로의 식당가는 비싸고 붐빈다. 가성비가 괜찮다는 밥집을 찾아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이마빌딩 앞, 움막처럼 보이는 두 동의 천막이 보였다. 사람 두 명이 겨우 누울 수 있을 듯 자그마한 크기에 낡은 비닐이 둘둘 감긴 천막에는 ‘삼표는 직접 고용하라’, ‘정규직 전환’ 요구들이 걸려있었다. 오피스 건물들 사이, 사무직 노동자들로 가득한 거리에 시멘트 노동자의 농성장은 굉장히 이질적이고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저 노동자들은 무슨 이유로 여기서 투쟁하고 있을까? 동양시멘트 지부를 비롯해 아사히비정규직지회,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콜트콜텍 등 투쟁사업장 노조들이 함께하는 공동투쟁 농성장이 광화문에 있다. 그곳에서 동양시멘트지부 안영철 사무국장을 만났다.


삼표본사.jpg

동양시멘트지부는 삼표 본사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다.(@동양시멘트지부)


차별에 맞서 노동조합 결성


동양시멘트가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회사는 위기를 핑계로 하청 노동자의 임금 소급분을 지급하지 않았다. 사측은 큰집이 어려우니 작은집도 희생을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소급분은 지급했다. 최저임금에 가까운 임금을 받는 하청 노동자의 임금 소급분 금액은 정규직 노동자의 1/10 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하청업체 직원들은 고용 보장을 해줄 수 없다는 소문이 돌았다. 고용까지 불안해진 하청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101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현장에서 83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굉장히 좋았어요. 우리가 현장을 장악하고 나니까 관리자들도 마음대로 못하는구나. 덤프 운전하는 사람한테 하루 종일 삽질 시켜도 한마디 못하던 현장이었는데 니가 뭔데 그런 지시를 하냐고 항의할 수 있었죠.” 


위장도급과 집단해고에 수수방관하는 정부기관


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에 위장도급과 불법파견 진정을 냈다. 시멘트업계 최초였다. 그러나 태백지청은 아무리 길어도 6개월을 넘길 수 없는 진정 사건을 7개월 넘도록 처리하지 않았다. 태백지청 근로감독관이 동양시멘트 상무와 술을 마신 것이 퇴근 후 대리운전을 하는 조합원에게 걸린 일도 있었다. 노동자들이 지청장실 점거농성을 하고나서야 결과 발표를 약속받을 수 있었다. 


2015년 2월 고용노동부는 위장도급 판정을 내려, 조합원이 동양시멘트 정규직임을 인정했다. 노동자들은 정부기관에서 인정받았으니 해고시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오히려 생산량도 늘렸다. 그러나 동양시멘트는 정규직으로 인정하기는커녕 사내하청에 ‘도급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우리가 이겼고 회사도 살려야 하니까 이젠 예전처럼 생산하자. 그래서 더 일했어요. 그런데 설 명절 하루 전날 구두로 해고 통보를 받았어요. 전원해고.”

설 명절 하루 전에 하청업체 직원 전원이 해고를 당했지만, 고용노동부는 관련된 법 규정이 없다며 집단해고를 수수방관했다. 지방노동위, 중앙노동위, 법원에서도 해고된 노동자들이 동양시멘트 소속임을 인정했지만 조합원들은 여전히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동양시멘트 사측이 약 20억 원의 이행강제금을 납부한 채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체불 임금 소송에서 이겨 3년 치 월급 16억 4천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났지만, 회사는 이 돈을 공탁하고 강제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반면 정부기관은 노동자들에게는 혹독했다. 대체인력 투입에 항의하는 조합원들을 연행하고 7명의 조합원을 구속시켜 형을 살게 했다. 


노조 탈퇴하면 사라지는 손배가압류


동양시멘트를 인수한 삼표는 ‘다물제이호’라는 유령회사를 이용해 조합원들에게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통장과 집, 전월세 보증금 심지어 임대아파트 보증금과 중고차까지 가압류 당했다. 가압류를 견디지 못한 조합원 다수가 노동조합을 탈퇴하고 자회사로 복귀했다.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취하하는 조건이었다.

“소문이 돌았어요. 복귀하지 않으면 16억인가 손배소를 할 거라고. 노동조합을 탈퇴한 조합원들의 손배가압류는 싹 빼줬어요. 삼표가 주장하는 수십억의 손해가 실제로 발생한 거라면 끝까지 받아야 하잖아요. 노조를 탈퇴하면, 근로자지위확인을 포기하고 복귀하면 손배를 취하해 주겠다는 게 말이 되나요?”

손배가압류를 제기한 ‘다물제이호’는 동양시멘트가 100퍼센트 출자한 자회사로 고용노동부가 페이퍼컴퍼니라고 인정한 회사다. 안 국장은 실체도 없는 회사를 내세워 50억 2천만 원의 손해를 주장하는 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사측의 회유과 협박, 가압류 어려움으로 83명으로 시작한 노동조합은 현재 23명의 조합원만 남았다. 


삼척.jpg

삼척에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선전전을 하고 있는 동양시멘트 노동자들.(@동양시멘트지부)


동양시멘트지부는 ‘법원 판결 이행’을 요구하며 ‘비정규직 철폐’를 목표로 투쟁하고 있다. 처음에는 노동부 판정에 따라 정규직 전환이 목표였고 해고된 이후에는 정규직 복직이 목표였다. 그러나 노동부의 판정도 법원의 판결도 소용없는 현실을 겪으며 목표가 바뀌었다고 한다.

“노동자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정부는 기업 편에 서서 방관하고 있어요. 법원 판결을 이행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합의 보면 끝나죠. 주변에서는 자꾸 적당히 합의 보라고 해요. 그러나 이건 우리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비정규직 전체의 문제이고 노동자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쉽지 않은 싸움이지만 언제가 누군가는 해야 되는 거니까요.” 

해고와 구속, 손배가압류의 탄압에도 굽히지 않고 23명의 조합원이 남아 투쟁을 하고 있다. 이 노동자들을 지탱하는 힘은 무엇일까? 인터뷰 말미에 질문을 던졌는데 돌아가는 길에 안 사무국장에게 메시지가 왔다.

“투쟁 현장에 대한 관심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힘입니다.^ ^”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