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주의보

by 센터 posted Feb 27,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안개의 제국엔 국경선이 없다. 더 이상 도망칠 백성은 없으므로, 한번 갇히면 누구도 헤어나지 못하지만 그런 연유로 제국의 문은 열려 있고 천지간은 적막으로 가득 떠 있다. 어느 새벽 자전거를 탄 이국의 사내가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간 적 있다. 비어 있으나 비어 있지 않고 차 있으나 차 있지 않은 그곳에서 꼼짝없이 여생을 갇혀 지내야 하는 일이 사람의 나라에선 외롭고 슬픈 일이지만 안개의 제국에선 흔하고 흔한 일, 아무도 자진 월경越境한 자의 행방은 수소문하지 않는다. 한번 삼키면 뱉을 줄 모르는 자본의 뱃속처럼 어둡고 컥컥한 길을 따라 그는 아직도 불 꺼진 공장 밖을 전전하고 있을까. 도道를 도라 말하면 도가 아니듯 무無를 무라 하면 무가 아니듯 죽음을 죽음이라 말하지 않는 사람들, 저 속절없이 자욱한 안개숲에는 더 이상 가지를 내밀 수 없는 나무들이 있다. 혼자인 듯 아닌 듯 아스라이 하늘을 괴고 서 있는 저것들을 사람들은 전신주라 부르지만, 안개의 제국에선 깃발 없는 만장輓章이라 부른다. 지난여름, 자전거를 타고 나가 돌아오지 않는 사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란 말을 모른다.



이용헌.jpg

이용헌 시인은 광주(光州) 출생.

2007년 《내일을여는작가》로 등단.

시집 《점자로 기록한 천문서》가 있음.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 천국의 경비원 file 센터 2017.04.27 1562
» 안개주의보 file 센터 2017.02.27 1432
17 50년의 판타지 센터 2016.12.27 1302
16 울타리 밖에서 바라보는 거리의 이편과 저편 센터 2016.10.31 1663
15 바닥은 쉽사리 바닥을 놓아주지 않는다 file 센터 2016.08.24 1696
14 보호는 좋은 것입니까? 센터 2016.06.30 1664
13 리어카의 무게 file 센터 2016.04.28 1630
12 그리고 나는 저녁이 될 때까지 계속 걸었다 file 센터 2016.03.14 1747
11 이상한 집* file 센터 2016.01.26 1505
10 역사는 당신의 개인수첩이 아니다 file 센터 2015.12.07 1589
9 부서진 사월 file 센터 2015.10.05 1771
8 엄지손가락 file 센터 2015.07.24 2268
7 알 수 없는 것들 file 센터 2015.03.03 1677
6 생활 file 센터 2014.12.22 1710
5 출근길 file 센터 2014.10.21 3147
4 우리는 다 배우다 file 센터 2014.08.18 2166
3 비정규직 노동자, 세월호여! file 센터 2014.07.01 1846
2 밀양 file 센터 2014.04.23 1837
1 연대 file 센터 2014.03.20 1717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Next ›
/ 3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