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던 아버지는 판타지를 꿈꿨다
상상력을 사줄 수호신을 기다렸다, 다만 집에서
엄마가 공장으로 일하러 나간 사이 하나뿐인 방을 판타지 소굴로 만들었다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방바닥에 배를 깔고 슬금슬금 시를 썼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낭만이 싫었다 하나뿐이었던 방도 싫었고 하나뿐이었던 마루도 싫었고 없는 사람처럼 일만 한 하나뿐인 엄마도 싫었다
나풀나풀 가벼운 아버지는 집밖으로 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나가면 돈 나간다고 돈은 들어오게 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신념에 가득 차 있었는데 1년 중 하루는 정성스레 양복을 다려 입고 밖으로 나가 저녁에 들어왔다 한 손엔 작은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는데 소고기 반근과 미역 한 움큼이었다 철야하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동안 아버지는 쌀을 안치고 소고기 미역국을 끓였다 나는 그때가 가장판타지적인 공간에 있었다고 기억한다
철야를 하고 온 어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버지를 욕했는데 1년의 그 하루만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밥상 위 소고기 미역국에 밥을 말아 코 박고 먹기만 했다
아버지는 옆에서 기타를 쳤고 나는 쌀밥의 냄새와 소고기 미역국의 향긋함에 미움이 사라지는 하루였다
팔순의 아버지는 여전히 일 년 중 하루는 소고기 반근과 미역을 샀으며
팔순의 어머니는 여전히 아버지 원망을 1년 중 단 하루만 빼고 주구장창 한다
아마,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하루의 판타지를 50년 째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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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아 시인
2006년 제15회 전태일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아무나 회사원 그밖에 여러분》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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