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심리 치유] 사람에게는 곁이 필요하다

by 센터 posted Aug 2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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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지만, 마음이 아프면 혼자 끙끙 앓는 사람들이 많다. 처음엔 망설이지만 용기를 내어 상담실 문을 두드린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말하기 쉽지 않은 내면의 이야기를 들려준 분들에게 글로나마 감사함을 전한다.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치유의 시간


심심에 노크하기 전 많이 망설였고 용기 내어 진행하면서 상담 내내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불편했다. 그리고 주로 들어주시기만 하는 선생님이 이상하고 야속하기까지 했다. 내가 생각하고 상상한 상담은 내 얘기를 듣고 그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식에 조언 내지는 답변을 기대하고 있었던 거 같다. 그러나 총 20주를 넘기면서 10주 더 추가해 30주까지 이어지는 동안 깨달았다. 내 안에 내가 미처 인식하고 있지 못했던 모습들이 상처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아프지만 하나하나 정리되어가고 있었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스스로 답을 찾아가며 치유해가는 시간들이었다. 나처럼 고민하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강력히 추천해 드리고 싶다. 끝으로 매시간 같이 울어주신 OOO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마음의 지도’를 얻게 된 상담


그 문 앞에 서기까지 꽤 오래 서성였다. 지인이 “비영리단체 활동가들을 무료로 상담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추천했을 때만 해도 ‘시간 없음’ 뒤로 숨어버렸다. 나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게 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나를 ‘상담이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하기 싫었다. 그러다 ‘살아간다’는 자의식보다, ‘견딘다’ 혹은 ‘살아진다’는 자괴감이 강해지던 어느 날, 내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온전하게 들어주는‘외부세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게 되었고 그때 이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실무자에게 상담을 신청하고 일정을 조율한 후 담당 선생님이 연결되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어느 월요일, 드디어 그 문 앞에 서게 되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10분 정도 침묵한 당황스러운 첫 만남을 뒤로 하고, 기본 프로그램인 20주도 길다고 느끼던 내가 추가 프로그램을 신청하여 30주 동안 꾸준하게 선생님을 만났다. 여름 끝에 만나 봄을 통과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았지만 사실 단순했다. 그 누구도 아닌, OOO 간사라는 이름이 아닌 오롯이 ‘나’에 관한 이야기였다. 상담이 진행되는 50분간 선생님은 순전히 나에게만 집중했다. 살면서 나를, 내 이야기를, 이토록 전적으로, 지구력 강하게, 경청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던가.

상담을 받으니 뭐가 달라졌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글쎄, 잘 모르겠다. 다만 ‘마음의 지도’를 얻었다는 대답은 할 수 있겠다. 30주. 1,500분 동안 선생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아니,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 과정을 통해 내 감정을 설명할 언어, 내 상태를 이해할 지도를 선물 받았다. 이 지도는 나를 지금보다 더 단단하게 만들 것으로 생각한다. 살면서 누구나 길을 잃는다. 옳게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길이 맞나?’ 싶은 순간도 맞이하고, 길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벽을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럴 때 지도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분명 다를 것이다. 상담 프로그램은 그 지도를 내 마음에 쥐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가 필요한 이들은 망설이지 말고 문을 두드리면 좋겠다. 분명 그 시간이 헛되지 않으리라.   


나를 회복해가는 치유의 시작


삶이 힘들고 고달플 때 누군가와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많은 위안과 위로가 될 것이다. 그런 누군가와 늘 함께한다면 삶의 어떤 어려움도 잘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얻고, 잘살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려울 때, 내 가슴 속 깊은 이야기를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나 자신에게 마저도 꺼내지 못할 때. 그럴 때 누군가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 그 한 사람에게 조용히 나를 드러낼 수 있게 하는 것이 상담인 것 같다.

상담을 통하여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마음을 알아주면, 내가 나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나를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스스로 자신을 깊이 성찰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살아 갈 수 있게 한다. 상담은 나를 회복해가는 치유의 시작이다. 상담을 통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예전의 모습들이 조금씩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현재의 내 모습과 나를 점점 더 선명하게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내 삶 속에서, 내 주변에서, 인생의 조언자가, 믿을 만한 의논 상대가 존재한다는 것이 더욱더 나를 안심하게 한다.


마음에 생긴 단단한 근육


상담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경계와 두려움, 아주 작은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 첫 상담은 ‘이게 다야?’하면서 나왔습니다. 상담 받으러 간 것이니까 당연히 뭔가 시원한 답을 얻을 거라 생각했는데 한 시간 내내 내 이야기만 했습니다. 두 번째 상담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네 번째···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날은 홀가분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일주일 내내 너무 고통스럽기도 했습니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부담스럽기만 했던 상담 시간이 횟수가 늘어날수록 기다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주에는 어땠어요?” 한마디에 눈물부터 왈칵 쏟아질 때가 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알았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내 이야기를 이렇게 해본 적이, 어느 누구도 내 이야기를 이렇게 오랜 시간 들어준 적이 없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조언과 위로가 없이도 용기가 생겼습니다. 삶을 되짚어 나를 돌아본 적도 처음이었습니다. 그동안 살아왔던 삶 속에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힘이 있었고, 지금의 나를 힘들게 하는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투쟁, 집회, 농성, 구사대, 침탈, 폭력, 용역, 미행, 가압류, 신용불량, 해고 노동자, 벌금, 구속···. 이 낯선 단어들이 일상이 되었을 때, 누구보다 투쟁하는 노동자다워야 했습니다. 노래 가사처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는 것이 부끄럽고 속상해도 늘 웃으며 당당하게 투쟁하는 노동자다워야 했습니다. 투쟁하는 노동자답게 개인의 감정이나 약한 마음을 드러내서는 안 되고, 조직이 우선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나를 잃어가는 것,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나를 돌보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투쟁에 힘든 시기가 닥쳤을 때,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힘든 시기가 닥쳤을 때 승리를 위해서, 동지들을 위해서, 유서를 쓰고 삶을 포기하려는 극단적인 방법을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 닥친 현실을 상담으로만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현실을 정면 돌파하는 힘, 때로는 돌아갈 수도 있는 지혜, 잠시 쉴 수도 있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사람의 몸에 힘을 키우기 위해서 근육을 만드는 것처럼, 마음에 힘을 키우기 위해서도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장 먼저, 나 자신을 돌보고 챙겨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전히 속상하고 힘든 일도 많습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마음 상해가며 자학하고 앓고만 있지는 않습니다. 감기 몸살처럼 앓고 툭툭 털고 일어납니다. 2년여 상담 시간을 통해 단단하게 마음에 생긴 근육 덕분이겠지요.

더 건강해지려고 비타민을 먹듯이 마음에 비타민을 준다고 생각하면 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도 근육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나도 몰랐던, 나 알아봐주기


나는 내가 어떤 고난과 역경을 겪지 않고 나름 순탄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재의 나는 주어진 일도 그럭저럭 잘하고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다. 그렇게 살다가, 다른 사람들이 나로 하여금 힘들어하고 상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상담을 받게 됐다. 상담을 받는 동안,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나는 고난과 역경을 겪은 사람이었다. 크든 작든 나에겐 큰 고난과 역경이었고 그것을 견디며 ‘생존’하기 위해서 나는 나만의 보호막을 만들어왔다. 내가 잘하는 것은 나보다 잘 못하는 사람과 비교해가며, 나의 장점을 더욱 크게 부각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방식을 취했다. 거꾸로 나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순간에는 급 당황하며 부족함을 숨기기 위해서 소리 지르고 화를 내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사실 대응이라기 보단, 그냥 신체 반응이었다. 나의 부족함이 드러나면, 어릴 적 받은 따돌림을 또 당할 것이라는 무의식적이고 무조건적인 신체 반응이었다. 다혈질이라거나 성격이 급해서 그런 줄 알았던 내 성격 밑에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생존하기 위해 만들어낸 ‘내가 모르는 나’가 있었다.

상담은 나를 들여다보고 나를 알아봐주게 하는 일이다. 상담은 내가 의식하지 못했던 보호막을 걷고 나를 인정하고 나 자체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갔다


 나는 기회가 될 때 투쟁현장에서 노래로 연대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건 사고들로 인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투쟁이 된 이후 현장에서 노래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피투성이인 마음을 감추고 누군가에게 힘을 내자며 노래하는 것이 왜인지 스스로와 모두를 속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불안과 분노가 극에 치닫던 작년 9월 즈음,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겠다는 심정으로 공감대화를 시작했다.

여느 상담과 다를 것 없이 그저 해결책을 던져주는 방법으로 진행될 줄 알았는데 웬걸,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하게 되었다. 숨쉬기, 멍 때리기, 어느 한순간의 감정에 집중하기 등. 그 중에서도 어느 한순간에 집중하기를 가장 공들여 연습한 것 같다. 그렇게 한 주, 또 한 주가 흘러 8개월 정도가 지났다. 그 시간들을 돌아보니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후회하고 있던, 자책하고 있던, 분노하고 있던 지난 시간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이해는 그 시간의 나를 인정해주고 토닥여줄 수 있게 했다. 핵폭탄 같은 외부적 사건들로 인해 자존감마저 무너진 내게 나를 인정할 수 있음은 아주 중요했다.

공감대화를 마친 지금도 여전히 연습하고 있다. 툭 하고 올라오는 어떤 한 감정에, 어떤 한 기억에 머물러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연습. 사실 그 시간이 낯설고 민망하기도 해서 빨리 빠져나오고 싶지만, 결국 이 시간을 통해 거짓 없이 나 자신과 소통할 수 있음을 매 순간 깨닫는다. 나 자신과 솔직하게 소통할 수 있다면, 다시 현장에서도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진심으로, 기쁘게 너 스스로를 응원할 수 있는 날이 올 거야!”라고. 무슨 말인지 이해도 되지 않고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의문만 가득했던 저 말이, 공감대화를 마친 이제는 조금 마음에 와 닿는다. 이제는 진심으로 나를 응원할 수 있을 것 같다. 계속해서 현재 진행형이었던 ‘괴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공감대화를 통해 일단락되었다. 이제는 감히 그 괴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갔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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