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그립다

by 센터 posted Apr 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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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황소.jpg

황소/종이에유채/32.3*49.5cm/1953년무렵


길 떠나는 가족.jpg

길 떠나는 가족/종이에 유채/29.5*64.5cm/1954년


이중섭 그림.jpg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종이에 잉크와 유채/20.3*32.8cm


외딴섬 외롭게 버려진 누추하고 작은 집, 세상 절벽 끝에 몰린 가족이 겨우겨우 버텨나가는 방 한 칸에는 궁핍과 고독 그리고 애틋함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이 집 안주인은 ‘야마모토 마사코’라는 일본 여인으로 한국 이름은 ‘이남덕’이다.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온 덕이 많은 여자’라는 뜻으로 남편 이중섭이 아내에게 지어준 한국 이름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화가 이중섭을 기억할 것이다. 한국 근대미술의 대표작가로서 초중고 미술 교과서에 붉은 색감의 대담하고 거친 선묘가 특징인 그의 작품 <황소>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일제식민지, 시대는 어둡기만 했지만 청년 이중섭에게는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일본 유학 중 숙명처럼 한 여인을 만나 열애를 하고, 그의 연인 마사코 또한 ‘사랑’이란 두 글자만 품고 겁도 없이 조선 땅에서 조선인의 아내 남덕이로 살아간다. 이들은 아주 잠시 행복했다. 하지만 전쟁은 그들의 행복을 불행으로 바꿔버렸다. 해방을 맞이하자마자 혼돈 속에 전쟁과 대면하면서 부산과 제주도를 오가며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다. 남덕은 폐결핵에 걸리고 아이들마저 병이 들어 결국 일본으로 떠나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이중섭은 궁핍과 고독에 맞서 가족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그리움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창작의 의지를 불태웠지만, 결국 41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쓸쓸히 갈무리했다.


그의 드라마틱한 삶은 남루하기 짝이 없는데 그림의 정서는 천진무구한 소년의 정감으로 경쾌하고 해학적이다. 종이 한 장 살 수 없어 담뱃갑의 은색 속지에 그릴 수밖에 없었던 옹색함과 비루함 속에서도 그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은 오롯이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었을 것이다. 애달픔과 그리운 가족에 대한 향수, 부재의 갈구가 바로 화가 이중섭에게 창작 활동의 원천을 제공해 주었으리라. 그림의 어원이 바로 그리움이니까!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그의 안타까운 삶과 사랑의 절절함이 묻어나는 작품은 세월의 무게만큼 고스란히 감동으로 다가온다. 더할 나위 없이 한 여자를 사랑한 남자, 그리고 못 견디게 자식을 보고파했던 아버지 이중섭. 

나 또한 오늘, 그가 그립다.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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