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by 센터 posted Jan 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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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의 인구조사The Census at Bethlehem 1566년, 목판에 유채, 116×164㎝, 안트웨르펜 왕립미술관


그림은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1525경∼1569)의 대표작 〈베들레헴의 인구조사〉입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인구 조사의 명을 내리자 모든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호적 등록을 해야 했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가 나사렛을 떠나 베들레헴에 입성한 장면입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예수가 태어나기 전날 베들레헴의 성경 속 풍경입니다. 그럼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그림 속 요셉과 마리아를 찾아볼까요?


낡은 오두막집 앞 창가의 한 남자는 공책에 무언가를 적고 있고 인파가 무리 지어 있습니다. 아마도 세금을 내는 사람들 같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강 위로 봇짐을 지고 걷는 고단한 사람들,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땔감을 나르는 사람들, 불가에 모여 있는 사람들, 군데군데 존재감 없는 군상들은 거칠고 냉혹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추위에 떨고 삶에 지친 어른들 밑에서도 아이들은 마냥 겨울을 즐기고 있습니다. 눈싸움을 하는 아이들, 얼음판에서 팽이를 치는 아이들, 바구니를 썰매 삼아 타는 아이들. 역시 아이들은 새로운 희망입니다.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누가 주인공인지 누가 조연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는 놀라운 기적이 숨어 있었습니다. 전경 중앙에 푸른 망토 차림에 나귀를 탄 만삭의 여인과 그 앞에 밀짚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바로 마리아와 요셉입니다. 그들은 묵을 숙소를 찾지 못해 결국 마구간에 여장을 풀었고,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그곳 말구유 속에 아기 예수를 낳았던 것입니다. 사실 성모 마리아 또한 왕도 공주도 아닌 그저 평범한 나사렛 처녀일 뿐. 오히려 병든 노인의 딸이고, 고단한 목수의 약혼자이며, 자신의 몸 하나 의지할 곳 없어 마구간에서 새 생명을 낳을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여인의 몸이었습니다.


인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 아기 예수의 탄생이라는 위대한 역사의 현장은 군중 속에 묻혀 아무도 마리아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거룩하신 역사가 이 땅 낮은 곳에서 아기와 같이 연약한 모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놀라운 기적을 우리는 어쩌면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가는지도 모릅니다.


이윤아 센터 기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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