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해가 떴다. 어제 또 그제의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애써 의미를 찾는다. 매듭 삼아 오늘 더 새롭기를 바란다. 그 새벽 어디 높은 곳이며 땅끝을 찾아 발을 동동 굴렀다. 그 볕은 대체로 공평한 편이어서 새벽어둠과 추위를 견디던 사람들의 볼에, 눈에, 코에 고루 이르렀지만, 그늘 짙은 곳엔 미치질 못했다. 오래전 쌓인 눈이 그대로다. 얼음으로 남았다.
어느 광장에서 손잡은 연인은 떨어질 줄을 몰라 이인삼각 꼴을 하고 엉거주춤 빙판을 기었다. 노란색 안전모 쓴 아이들이 겁도 없이 치고 나가는 통에 뒷자리 따르던 부모가 뒤뚱거렸다. 서툰 솜씨였지만 저마다의 속도로 나아갔다. 넘어져도 웃을 일. 손잡아 일으켜 줄 이가 곁에 있었다. 머리 희끗희끗한 왕년의 청춘은 녹슬지 않은 솜씨를 뽐내려다 그만 들것 신세를 졌지만 허허 웃고 말았다. 음악 틀던 디제이가 소리 잠시 줄여두고 말솜씨를 뽐냈다. 흥을 돋웠다. 망원동에서 온 누군가의 가족 사랑 사연을 알렸고, 빙판 위 젊은 남녀의 애정행각을 지적했다. 붉은색 점퍼 입은 젊은 여성의 전화번호를 애타게 기다린다는 외로운 청춘의 마음도 마이크 잡아 전했다.
새해 광장에서 해 지는 줄도 모르고 사람들은 즐겁다. ‘올해는 당신’이라고 적힌 새 현수막이 도서관 벽에 걸렸다. ‘기아차 비정규직 정규직화’라고 적힌 낡은 현수막이 옛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위에 해를 넘겨 여전하다. 넘어가던 햇볕이 그래도 공평한 편이어서 거기 잠시 머문다. 그 자리 하늘을 지붕 삼아 오래 머문 사람이 엉거주춤 오가다 가만 섰다. 빙판 위 즐거운 사람들을 한참 살폈다.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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