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괴롭힘,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다

by 센터 posted Dec 0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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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서선영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직장 내 괴롭힘’, 3년 전쯤 이 용어를 사용했을 때 대부분의 반응이 처음 들어보거나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는데 표현이 생소하다는 것이었다. 출근길이 너무나 괴롭고 ‘이건 아닌데’라는 일들을 겪고 목격했지만 그것을 ‘괴롭힘’이라고 이름 붙이지는 못했다.


해고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괴롭혀서 스스로 나가게 하는 방식의 괴롭힘, 과도한 목표치를 부여하고 사람을 쥐어짜는 형태의 괴롭힘, 신체적이고 직접적인 폭력들, 폭언들. 정보 안 주기 등 사실 우리의 일터에서 괴롭힘은 너무나 많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몇몇 극단적인 사례나 체계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밝혀진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괴롭힘은 여전히 묵인되거나 수용되고 있다. 때로는 괴롭힘의 피해자가 다른 공간에서는 괴롭힘의 가해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괴롭힘에 대한 조사와 인터뷰, 간담회를 하다보면 괴롭힘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당연시 하는 모습을 종종 만나게 된다. 갈등과 괴롭힘은 종종 혼동되고 ‘직장에서 마냥 좋을 수만 있나’ 하는 식으로 괴롭힘 문제는 회피되거나 억눌려져 왔다. ‘노조 파괴’, ‘해고’라는 커다란 문제들 앞에서 괴롭힘 문제는 사소화되고 개별화되기도 했다. 괴롭힘을 정면으로 마주보지 않는 사이 어떤 노동자는 우두커니 책상과 벽만 바라보다 우울증에 걸렸고 어떤 노동자는 일터를 떠났다.


왜 괴롭힘은 관용되고 있는가. 왜 괴롭힘이 발생하고 그 양태는 무엇인가. 괴롭힘을 당한 사람에서 괴롭힘을 당할 만한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무엇인가. 이것을 규제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괴롭힘을 관용하는 관행과 언어들


“남의 돈 벌어먹고 사는 게 어디 쉽나”, “인격은 집에 두고 출근한다”, “그런 것도 못 참고 어떻게 사회생활하나”, “재수 없는 놈 만났다고 생각해라”,   “일 안 해도 월급 따박따박 주는데 왜 불만이냐”, “소비자가 왕이다”괴롭힘이 수용되는 통념들이다. 임금, 돈, 수수료만 남고 노동의 다른 의미들은 사라져버렸다. 노동은 돈으로만 교환되면 되는가?


노동이 돈으로만 교환될 수 없다는 원칙은 추상으로서는 여전히 유효하다. 인류가 비인류적으로 되는 것이 얼마나 빠르고 쉬운가를 확인한 2차 대전 후 인간존엄성을 확인한 대표적 문서인 세계인권선언(1948). 그러나 그 전에 먼저 정초되었던 존엄성 선언은 국제노동기구의 목적을 담은 필라델피아 선언(1944)이었고, 그 제1조가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노동은 돈으로만 교환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고 노동과 인격, 존엄성은 분리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판결에서도 이런 원칙은 문장으로서는 확인되고 있다.


“근로 계약에 따라 계속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닌 인격체이고 자신의 전인격을 사용자의 사업장에 투입하고 있는 점에서 근로 관계에 있어서 근로자의 근로 제공은 자신의 인격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고 한편 근로 계약에 따른 근로자의 근로 제공은 단순히 임금 획득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 근로자는 근로를 통하여 자아를 실현하고 나아가 기술을 습득하고 능력을 유지·향상시키며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등으로 참다운 인격의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자신의 인격을 실현시키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부산고등법원 2014. 7. 10. 선고 2013라299 판결)


그런데 다시 우리의 통념들로 돌아와 보면 선언들과 판결문의 문장들이 너무 공허하다. 노동자는 비용의 문제로 환산되고, 성과를 산출하지 못하면 버려져야 할 상품일 뿐인 것이 지금의 노동 현실이다. 비용으로만 환산되는 노동은 해고의 요건이 없어도 정리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이 과정을 즐겨라” 하는 말들을 너무나 많이 들어서 낙천적 성격이 아닌 사람은 ‘불만자’로 여겨진다. 공동체성이 파괴된 일터에서 일을 잘 못하는 노동자는 동료 노동자들에게도 걸림돌이 되고 괴롭힘을 당할 만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자신의 일터에서 당한 모멸을 ‘고객’이 되는 순간 다른 노동자에게 똑같은 모습으로 행하기도 한다.

각각의 일들로 여겨지고, 당연시했던 생각들에 질문을 던져 보기 위해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한번 모아보는 것들이 필요할지 모른다.

경계1.png


우리 일터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괴롭힘의 양태는 매우 다양하다. 2015년이라는 것이 낯설 정도로 아직 우리 일터에서는 직접적 폭력이 드물지 않다. 최근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직장 내에서 신체 폭력을 당한 경험’이 15.7퍼센트로 조사된 사례도 있다. 폭언이나 모욕도 다반사다. 직접적 욕을 하기도 하고, “너 같은 놈은 죽어버려라”라는 말도 한다. 돌려서 말하는, 그러나 괴롭히려는 의도가 농축된 모욕적 표현은 더욱 힘들다. 남들도 다 가는 화장실인데 비리를 제보했던 피해자는 화장실을 갈 때마다 “왜 그렇게 자주 가냐, 병원에 가봐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인트라넷을 차단하거나 회식에서 배제하는 등의 왕따는 오히려 알아차리기라도 쉽다. 친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인사를 안 받아서 그냥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만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노조 활동을 한 자신과 같이 밥을 먹었다는 이유로 인사고과에서 D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그 노동자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도저히 달성할 수 없거나 비윤리적인 영업을 해야만 채울 수 있는 목표치를 부여해서 회사가 원하는 사람이 될수록 자신의 인격을 파괴해야 하는 경우, 우두커니 책상에 앉아서 벽만 바라보게 하거나 하루 종일 취업규칙 베껴쓰기, 산수 문제 풀기 등 의미 없는 노동만을 부여하는 경우도 있다.


괴롭힘의 양태도 다양하지만 그 원인도 다양하다. 그 중 해고 규정을 회피하기 위해서 하는 ‘경영방식 일환으로서의 괴롭힘’은 작정하고 괴롭힘 프로그램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 C-Player라는 저성과자 퇴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C-Player가 된 사람은 스스로 회사를 떠나지 않는 이상 끊임없이 업무 지시서, 업무 촉구서, 서면 주의, 또다시 업무 지시서 이런 괴롭힘의 무한 반복을 겪다가 결국 파면을 당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 사례도 밝혀졌다. 파업 후 복귀한 노동자에게 풀 뽑기를 시키는 등의 노조 파괴형 괴롭힘, 고용 형태의 차이(정규직-비정규직)을 원인으로 하는 괴롭힘, 정체성을 이유로 한 괴롭힘, 비리를 제보했다는 것을 이유로 한 괴롭힘, 성과주의를 원인으로 하는 괴롭힘, 그리고 괴롭힘의 피해자이면서도 또 그 모멸을 전가하는 형태의 괴롭힘도 있다.


 괴롭힘은 갈등이 아니다


부대끼고 살아가는 사회에서 갈등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괴롭힘은 갈등이 아니다. ‘당할 만한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실제 괴롭힘 피해자는 어느 순간 피해자가 아니라 “저 사람은 성격이 좀 이상해”라는 말까지 듣는 경우가 많다. 괴롭힘의 특징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고조성이다. 약한 괴롭힘에서 시작해서 점점 괴롭힘이 높아지는 현상이다. 괴롭힘의 고조과정에서 피해자는 주변의 자원이 점점 사라져가고 무력해진다. 그 과정에서 또 한 번의 낙인이 찍히고 결국 괴롭힘의 피해자가 괴롭힘의 원인제공자라고 의미화된 후 결국은 조직에서 배제되고 추방된다. 괴롭힘에 공동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개별화될수록 가해자는 사라지고 ‘피해를 당할만한 사람’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럴만한 사람은 누구든지 될 수 있다. 퇴출 프로그램에 들어간 사람은 영원히 능력 없는 저성과자가 될 수 있고, 업무 지시에 의해 풀을 뽑는 사람, 책상에 앉아서 우두커니 벽만 바라보는 사람은 회사 비용만 축내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불평불만자, 조직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되고 피해야 할 사람이 된다. 괴롭힘이 개별화되어 버리면 우리는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고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경계2.png


이런 다양한 양태들에 대한 대응이 가능한가


괴롭힘의 양태와 원인이 다양하다 보니 이것을 규제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실제 해외에서는 처벌조항까지 두는 사례도 있다. 프랑스 노동법전에는 ‘노동자의 권리들과 존엄을 침해하거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훼손하거나 직업적 장래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근로 조건의 훼손을 목적으로 하거나 그러한 결과를 초래하는 행위’를 정신적 괴롭힘(harcel-ement moral)으로 규정하고 형법전에는 이런 괴롭힘을 처벌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그 외에도 일터 괴롭힘을 법이나 조례, 협약 등으로 규제하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규제만으로 가능한가. 문제가 제대로 제기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적 접근만이 이루어질 때 오히려 괴롭힘 문제는 희화화되고 조롱거리로 전락할 수 있다. 제대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가 제대로 제기되지 않으면 경영 방식에 의한 괴롭힘, 노조 탄압형 괴롭힘, 개별화되고 파편화된 노동 구조 속에서 전가되는 괴롭힘의 맥락은 사라지고 그저 ‘착하고 친절한 직장인 되기’ 캠페인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공동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노르웨이의 노동활동가인 Jon Sjøtveit는 《사회적 망이 붕괴할 때》라는 책에서 ‘괴롭힘은 피해자인 사람들에게뿐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 감각에 타격을 가한다. 공동체가 개인을 보호할 수 없으면, 개인은 공동체에 관심 가지기를 주저할 것이다. 사회적 망은 붕괴된다’고 하면서 일터 괴롭힘을 노동조합의 중요한 이슈로 채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1)


일터 괴롭힘에서 노조의 역할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노동조합 조직률 10퍼센트, 그리고 더욱 심각하지만 알려지지 않는 괴롭힘이 많은 비정규직의 조직률은 1.9퍼센트에 불과한 현실(2014. 3월 기준)은 노조 강화만으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괴롭힘에 대해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일터 괴롭힘은 노조의 다른 ‘큰 문제’에 덤으로 가는 주제가 아니라 그 자체에 대해 더 많은 실태조사, 더 많은 문제제기가 필요한 이슈이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혼자서 맞닥트리고 있는 괴롭힘의 피해도 함께 말할 수 있는 무엇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공동의 것으로 대응하는 것’ 연대가 확장되고 강화되는 것이 일터 괴롭힘 대응의 가장 핵심이기 때문이다.


마치며


노동 시간이 가장 긴 나라에서 일터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은 삶이 괴롭힘으로 점철된다는 것이다. 괴롭힘을 전략적으로 채택할 때 가장 좋은 방식은 개인의 업무능력이나 성격의 문제로 돌리는 것이다. 괴롭힘을 부수적이거나 사소한 문제로 인식했던 관행도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던 원인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일터 괴롭힘은 그냥 부수적인 문제나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노동이란 무엇이고 일터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이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고 존엄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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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터 괴롭힘(Workplace Harassment)에 대하여〉. 2015. 9. 일터 괴롭힘에 대한 합동 세미나 보고 자료집(희망을만드는법,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인권연구소 ‘창’, 인권운동공간 ‘활’, 인권운동사랑방, 다산인권센터)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용어는 사무실 등 한정된 장소에서 발생하는 대면적인 현상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괴롭힘의 장소와 형태는 다양합니다. 진짜 사장은 숨어버리고 다양한 위계와 등급으로 괴롭히는 형태들이 있고, 장소를 바꿔가며 행해지는 다양한 형태의 노동들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들을 포괄하기 위해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용어 대신에 ‘일터 괴롭힘’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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