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슬픈 전설의 이야기

by 센터 posted Dec 02,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천경자 미인도.jpg 천경자 슬픈전설.jpg

위작 논란의 그림 < 미인도>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미인도〉 그림 속 여인인 나는 무척 슬프다.

천경자 화백(1924~2015)이 나에 어머니라고 하는데 그 분은 나를 강하게 부정하신다. 유전자 검사결과 친모라고 판정을 받았는데도 “자기가 낳은 자식도 몰라보는 어미가 어디 있냐”며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항거로 절필선언까지 하셨다. 국내 미술계 최대 위작 시비의 주인공인 나는 그녀의 슬픈  그림자가 되었다.  위작 논란이 있은지 8년이 지난 1999년 자신이 〈미인도〉를 위조한 장본인이라며 내 출생의 비밀을 밝혀주신 분이 나타났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다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작품 감정을 의뢰했지만 ‘진품’이라는 감정이 번복되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내 작품이 아니다”라며 그녀는 여전히 나를 거부하고···. 나는 그녀에게 또 하나의 슬픈 전설로 따라 다닌다.


위작 스캔들로 심신이 지친 그녀는 1991년 훌쩍 큰딸이 있는 뉴욕으로 떠난 후 8년 만에 잠시 귀국해 “내 그림들이 흩어지지 않고 시민들에게 영원히 남겨지길 바란다” 며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통크게 기증하고 다시 떠났다. 이후 노년에 불어닥친 병마 때문인지 한국과는 연락을 완전히 끊은 채 칩거 생활을 했다.


올 가을 천 화백의 미스터리한 때늦은 부고 소식 역시 한편의 드라마처럼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녀의 슬픈 전설의 이야기는 91페이지로 결말을 맺었다. 어쩌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그녀의 인생에 어울리는 엔딩인지도 모르겠다. 1977년에 그린 작품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는 50대인 그녀가 22세를 기억해낸 자화상이다. 사랑에 속고 사랑에 울던 스물두 살의 천경자 홀로 아이를 낳고 단칸방에서 탱탱 부어오른 젖가슴을 부여잡고 몸 속 깊은 곳에 고여 있던 슬픔을 그림으로 토해냈으리라. 


머리 위에 뱀 네 마리가 오글거리며 가시 면류관처럼 씌워져 있고 가슴에는 가시 없는 장미 한 송이가 있다. 말문을 닫아버린 차가운 입술과 창백한 얼굴에는 한기가 돌고 움푹 패인 눈은 덤덤하게 정면을 응시한다. 그림처럼 그녀는 운명에 당당히 맞선 삶을 살았다. 아니 운명에 도전하려는 섬뜩한 자의식 마저 느껴진다.


그녀의 슬픈 전설은 시대의 벽, 현실적 장애에 맞서 여성으로, 예술가로, 자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한국의 또 하나의 역사였다. 그림 속 여인은 슬픈 눈길로 덤덤하게 나를 응시하며 말을 건다.

“당신의 전설은 무엇인가요?  그 전설 또한 슬픈가요?”

대답을 찾기 전에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먼저 보낸다.


이윤아 | 센터 기획편집위원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