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사월
시계침에 매달린 인간들이 땅을 보며 걷는다
어젯밤에 썼던 콘돔은 튼튼한 것이었을까
일본 원전을 덮어씌운 콘크리트는 안전한 것일까
어제 명함을 주고받은 사람이 오늘은 당신을 모른 체하고 지나간다
바닥에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포개졌다가 흩어진다
잠시, 괴물의 형상이 되었다가 딱딱한 혼자가 된다
빈혈에 시달리는 가로수들
나뭇잎의 뒷면에서 어둠이 뚝뚝 떨어져
나무 밑동에 고인다
저 멀리서 온통 눈물로 젖은 얼굴이 걸어온다
그의 자식이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의사에게 시한부의 삶을 선고받은 것일까
그는 자신의 눈앞에 시시각각으로 닥쳐오는 불행들을 손으로 걷어내려는 듯
양팔을 휘저으며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가 내 곁을 지나갈 때 나는 눈을 감았다
그를 붙잡고
내가 같이 울어줄까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가 그를 껴안으면 그는 물이 되어 쏟아질 것 같았다
눈을 뜨니 구명정 같은 구름이 떼를 지어 흘러가고 있다
나는 햇살의 뼈를 만져본다
뼛가루 같은 햇살이 내 손바닥을 데웠다
죽어가는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나뭇잎이 떨고 있다
이 지상에 파견된 봄은 갈 곳을 몰라 서성거린다
가운데부터 검게 시드는 목련 잎에는 자신의 몸에 권총을 쏜 것 같은
탄흔이 남아 있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붕대를 감고 또 하루를 건너가겠지
눈을 감으면 수면을 뚫고 수많은 소금 인형이 걸어나온다
데운 조약돌로 눈두덩을 지져도 사라지지 않는
신철규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부서진 사월〉은 계간《시로 여는 세상》
2014년 가을호에 발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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