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휴머니스트

by 센터 posted Sep 3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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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쾌대작품 군상.jpg


이쾌대(1913~1965)의 대표작품 〈군상 4-조난〉과 마주한다. 스케일, 구도, 형상 모든 것이 한국 근대화단에 보기 드문 작품으로 생소한 울림이 느껴진다.

화폭 배경에 구름기둥이 폭발하듯 솟아오르고 먹구름처럼 밀려오는 공포와 절망에 몸부림치는 벌거벗은 군상들.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과 여인 속에 어지럽게 뒤엉켜 돌로 내리치고 물어뜯으며 싸운다. 인물의 묘사와 표정이 살아있다. 울부짖다 지쳐 쓰러진 여인을 보듬어 안고 서로 의지한 채 앞서 나가는 세 명의 주인공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리얼리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는 좌익이니 우익이니 한쪽으로 기울어진 그림이 아닌 순수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서구 낭만주의 형식을 담아 현실의 기운을 표현하였다. 그래서 그의 그림엔 ‘힘’이 느껴진다.


일제 식민지배의 상처와 해방 직후 이념분열로 갈등과 모순과 혼란의 어두웠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한다면 이쾌대처럼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그린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않다.

월북화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던 이쾌대는 1988년 해금되기 전까지 한국화단에서 그야말로 잊혀진 화가였다. 이렇듯 냉전 이데올로기에 꽁꽁 묶여 40여 년 동안 아내 유갑봉 여사의 다락방에 숨겨져 있던 작품들이 1991년 신세계미술관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당시 화단에선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니 아내의 눈물겨운 보존 노력이 우리 미술사에 큰 영광을 가져다준 셈이다.


‘한식이, 한민이, 아침저녁으로 아버지께 뽀뽀하는 우리 귀여운 수생이, 그리고 꼬마 한우 생각할수록 내 자신이 밉살스럽기 한량 없습니다.··· 아껴둔 나의 채색 등은 처분할 수 있는 대로 처분하시오. 그리고 책, 책상, 헌 캔버스, 그림틀도 돈으로 바꾸어 아이들 주리지 않게 해주시오. 전운이 사라져서 우리 다시 만나면 그때는 또 그때대로 생활설계를 새로 꾸며 봅시다.’


1950년 11월 11일 시대의 아픔으로 국군 거제도 포로수용소까지 끌려온 이쾌대는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담은 편지를 몰래 인편으로 아내에게 전달한다. 2년 후 전쟁은 끝났지만 그는 끝내 가족 곁으로 가지 못했다. 1953년 남북 포로교환 때 그가 택한 곳은 북한이었다. 가족에게 절절한 그리움을 전하던 이쾌대가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왜 북한으로 향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다만 존경하던 친형 이여성(독립운동가, 기자, 역사화가)이 월북하면서 따라갔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가족을 버릴만한 중요한 원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형제는 곧 북에서 숙청됐고, 모든 기록이 사라졌다.)  


이쾌대의 월북행을 단순히 이념 문제로만 바라보기에 어렵다. 아마도 곧 통일이 이뤄지리라는 확신과 함께 그가 자신의 양심에 어긋나는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제자인 남경숙은 이쾌대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1946년 말 북한에 다녀오신 선생께 사상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때 선생은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민족주의자다. 우리 민족은 훌륭한 민족이니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순수한 휴머니스트가 아니였을까?


이윤아 | 센터 기획편집위원


 * 전시정보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 전
 2015.07.22(수)~11.01(일)
 덕수궁 미술관
 관람료 무료
 www.mmc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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