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당분필

by 센터 posted Jun 03,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몽당연필.jpg


사진, 글 |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서울 어디 차 다니던 길에 사람이 들었다. 목소리 높였다. 차벽이 금세 높아 막다른 길이었다. 오도 가도 못했다. 아이가 쪼그려 앉아 길바닥에 글을 남겼다. 하늘나라 간 언니, 오빠의 안녕을 바랐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적는데, 분필이 자꾸만 뚝뚝 부러졌다. 몽당분필 겨우 쥐고서야 마침표를 찍었다. 풍선 달린 배 그림을 그 아래에 보탰다. 옆자리 사내아이는 결정적 오타를 남기고 말았지만, 가만히 지켜보던 엄마는 그럴 수 있다면서 아이를 격려했다. 곧 그 앞 높다란 차벽 너머에서 물대포 최루액이 힘껏 솟았다. 거리의 사람들은 몽땅 거칠거칠한 바닥에 나뒹굴었다. 매캐한 물이 거기 흥건했다. 쓰고 또 쓰고 몽당분필 되도록 길바닥에 새긴 불온한 추모글을 깨끗이 지웠다. 이럴 수는 없다면서 길 위의 사람들이 밤새 울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8 설 자리 file 센터 2024.01.09 22
57 가면 file 센터 2022.10.31 26
56 봄 마중 file 센터 2023.02.27 30
55 엄마 눈물이 툭 file 센터 2023.11.03 31
54 우리 만남은 file 센터 2023.04.27 38
53 이면, 혼신의 힘 file 센터 2022.04.25 39
52 비보호 file 센터 2022.06.27 39
51 겨울 file 센터 2022.12.22 45
50 연인은 웃는다 file 센터 2022.08.29 47
49 허수아비 file 센터 2022.02.24 49
48 붉은 ‘농성’ file 센터 2021.08.25 54
47 추락하는 것은 file 센터 2023.06.27 57
46 무사고 사이 file 센터 2023.09.13 59
45 훈장처럼 file 센터 2021.10.27 65
44 손잡아 주는 일, 기대어 서는 일 file 센터 2021.12.23 76
43 꼿꼿하게 file 센터 2021.04.26 115
42 유실물 file 센터 2021.02.24 123
41 밥 냄새 file 센터 2021.06.23 132
40 인지부조화 file 센터 2020.10.22 311
39 언제나 분수처럼 file 센터 2020.04.27 652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Next ›
/ 3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